한마음광장

우리동네 지킴이 한마음병원! 건강한 몸으로 새로운 행복을 찾으세요!

한마음광장 2019-02-18T21:11:23+00:00

Home > 한마음광장> 공지사항

미주아리

작성자
유건일
작성일
2018-01-20 02:43
조회
509
■ 미주아리와 야구공
“미주아리 빠지다.”
미주아리란 여러뜻이 있겠지만, 항문끝이라는 의미도있다.
치질(치핵)은 내치질(암치질)과 외치질(숫치질)로 구분하며,
암치질을 홍문안쪽 점막에 생기며,V
숫치질은 홍문 밖 점막괴 피부경계선에 생긴다.
미주아리가 빠진다고 하는 것은
암치질이 일단 홍문 밖으로 나오는 것을 말한다.
나오는 경우는 배변시 힘을 많이 줄 때나 복부에 힘을 주거나,
전신상태가 안 좋은 상태에서 일이나 보행을 많이 해도 빠질 수가 있다.
이놈이 크기가 작으면 손으로 살작 밀어넣으면 홍문 안으로 들어가나,
큰 것은 일단 홍문밖으로 나오면 다시 들어가기가 힘들 때 있으면,
통증이 심하거나 나온 점막덩어리가
괴사의 조짐이 있으면 수술을 해야한다.

하동으로 내려간지 다음해 초여름으로 접어들때다.
빗바랜 흰수건을 단정하게 머리에 묵고,
허리가 굽우정한 60 이 넘어보이는 할매가
땀을 딱으면서 주빗 주빗 진찰실로 들어선다.
“어디가 불편해서?”
"아니구 남사스러봐서."
몸을 조금 꼬면서 몹시 부끄러운 표정이다,
실은 애기보가 자주 빠져서 공을 넣었는데,
빠지지가 않는다은 것이다.
“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당시에 우리 어머니들은 피임도 잘 몰랐고,
애기를 낳아도 지금처럼 병원에 간다는 것은 시골에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보통 다섯 여섯 낳은 것은 기본이고 분만후
충분한 산후 조리는 할 틈도 없이,
미역국 한 2-3일 먹고 논으로 밭으로 일하려 간다.
첫아이 낳고 조금 쉴 새도 없이 둘째놈, 셋째놈
연년생을 낳고 일하고,
시골의 밭농사 논농사가 전부 반굽은 자세로 아래베에 힘을 주고 일을하니
젊었을 떼는 몰랐으나 60 이 넘어 애기보(자궁)가 약해지며
서서이 밑으로 처지게된다.
처진 자궁(버선 안쪽을 손을 넣어 아래로 끊어내리면 반 뒤집어진 상태라고 보면 된다)이 질내에 있으면 거북하기는 하겠지만
이것이 질 밖으로 일단 나오면 옷에 씰리고하여.
자궁 내막염(접촉성피부염이나 세균에 감염된다.)이 생겨
붓고 고름이 생기고 통증을 동반하지 않겠는가?
일단 처진 애기보(자궁)은 수술을해서 원위치에 고정시키거나,
자궁전부를 잘라내는 방법외에는 없다.
당시에 우리 어머니들은 이런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싶게 남한데 말 할 수가 없으며,
혼자서 고민을 하는 수 밖에 없다.

할매도 혼자서 끙끙 앏으면서 고민 고민 하다가,
어느날 장롱 구석에 손자가 갖이고 놀던 야구궁이 눈에 들어왔다.
“옳지"!
"저놈을 넣으면 안 나오겠구나?”
순간 지금까지의 고민을 혼자서 해결한것에 대하여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공을 깨끗이 씻고 씻어서,
들기를도 약간 바르고 조심스럽게 밀어넣었다.
아랬배가 약간은 뿌뜻하고 질 부분이 꽉찬 느낌이나,
일단은 앞으로는 안 나오겟지 하는 안도감과 만족감을 느꼈다.
다음 날 부터 아랫배가 아프고 소변 대변 보기도 힘들다.
(공이 뇨도와 항문을 앞,뒤에서 누르고 있으니 이해가 되지 않겠는가?)
약간의 열도 있으나 무엇보다도 고약한 냄새가 진동한다.
하루에도 시도때도 없이 씻었으나 냄새는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다..
하복부의 통증과 대소변 보는 고통이 시간이 갈수록 심해진다.
혼자서 다시 공을 빼려고 몇 번을 시도 하였으나
손이 닿으면 닿으수록 안으로 밀려 들어간다.
수술대에 눕히니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며,
질입구에 공은 부러트고 주위피부는 염증이 심하여 공의 일부분만 보인다.
바큼(분만시 난산일 경우 신생아 머리에 작은 캡을 대고 음압을 이용하여 분만 유도하는 의료기구)을 이용하여 공을 빼어냈다.
안에서 분비물과 고름이 뒤섞여 냄새가 난다.
공이 나온는 순간 할매도 시원함을 느낄수가 있었는지?
“아이구!”
하며 이제는 살았다는 목소리가 작게 들린다.
샐라인(생리식염수)로 질과 자궁내부를 마치 대청소하듯
질속에 넣고 다시 씻어내고,
여러번 질 세척을 하였다.
이차감염을 막기위한 주사도 놓고 약도 며칠분 주면서,
며칠간 꼭 병원에 나와서 치료를 받아야한다고 몇 번씩이나 다짐을 했다.
“얼마인교?”
아주 만족한 표정을 지우면서
기꺼이 처치비를 지불해야 하지 않겠느냐른 표정이다.
“ 어찌 치료비을 받겠는가?”
그러나 그 후 할매는 오지 않고,
10일이나 지난후 하동장날에 할매가
손에 보따리 하나를 들고 오더니,
“원장선상님! 참말로 고맙심니다.”하고
진찰실 입구에 놓고 휭하니 장터쪽으로 나간다.
풀러보니 옥수수, 감자,호박 이었다.
울컥이는 감정을 억제 못하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초여름의 햇살이 부드럽게 안 마당을 비추고 있다.
그 후로 얼마나 오래 사셨는지?
하동에서의 기억중 슬프고 안타까우면서,
40 여년전 우리들의 어머니 새대에,
농사가 천직인양 우매하고 착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어머니들의 한 단면이 아니겠은가?
>